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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아니라 생존자: 천경자 작품 속 화려함이 슬픔을 감추는 방식

박지나

미인이 아니라 생존자: 천경자 작품 속 화려함이 슬픔을 감추는 방식

천경자의 작품 속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쁘다’라는 감상이 먼저 나오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예쁘다. 그런데 그 예쁨이 편히 느껴지지 않는다. 강렬한 채색과 꽃, 장식적인 문양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과 대조되게 그 표정들은 쉬이 웃고 있지 않다. 정면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다. 화려함이 기쁨이 아닌 버팀으로 읽히는 순간, 천경자의 그림은 단순한 미인이 아니라 “살아남은 여인의 얼굴”이 된다.

천경자, <장미와 여인>, 1981, 종이에 채색, 27x22cm

이때 천경자의 색채는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숨기기 위한 갑옷이며, 감정을 지키는 그녀만의 방식처럼 보인다. 꽃들이 즐비하고 색감이 다채롭지만, 표정은 차갑다. 천경자의 여인들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상처 위에서 균형 잡고 살아가기 위해 예쁜 존재로 느껴진다. 그래서 관객은 묻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화려한데,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일까.”

어쩌면 이 외로움의 시작점은 천경자의 삶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천경자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여동생 옥희를 잃었으며 첫 번째 결혼생활은 그녀에게 마냥 행복한 시간으로 남지만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어린 나이였고 남편은 두 번째 아이가 채 돌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의 두 번째 결혼에서도 네 아이를 동시에 홀로 키워내야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러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꿋꿋하게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며 여인들을 그려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화려함은 축복이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기 위한 방식으로 굳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찬란한 색들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고 마냥 감정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형태였다고 볼 수도 있다. 

말레피센트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얼굴은 비단 회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표정을 지닌 캐릭터를 볼 수 있다. 영화 속 말레피센트가 그렇다. 말레피센트는 디즈니의 고전에서 ‘악역’으로 소비되던 캐릭터였지만, 재해석 된 이후 그녀는 단순한 악역으로 남지 않는다. 우아하고 강렬함과 동시에 아름답지만, 자신의 상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사랑하던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날개를 잃는다. 그러나 그 이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공고히 세우고 날카로이 날을 세워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그래서 말레피센트의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닌 무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려함이 누군가를 매혹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 방어하는 듯 보인다. 그녀는 아름답게 존재하지만, 그 속에는 슬픔이 자리 잡고 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단단하게 자기 자신을 지킨다. 

다시 천경자의 여인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다. 꽃과 색이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얼굴은 고요하다. 환하게 미소를 드러내기보다는 단단히 화면 너머를 응시하고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보다 조용히 존재한다. 천경자의 여인들은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상처받고 슬픔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지탱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 화려함은 일종의 방어기제 혹은 생존본능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려 함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한 태도와 같다. 그녀가 그려낸 여인들은 결국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나는 예쁘게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존재한다”

박지나 wlskjicqc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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