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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29) 브리아나 레더버리 Brianna Leatherbury

권화영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브리아나 레더버리(Brianna Leatherbury): 냉장 시스템에 내재된 포스트식민적 사유


권화영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섹션인 5전시실에 들어서면 어두운 전시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이동식 컨테이너가 눈길을 끈다.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제작된 미국 작가 브리아나 레더버리(Brianna Leatherbury, b.1995)의 작품 <무거운 짐(Burden)>(2024)이다.1) 비닐 커튼을 젖히고 조명이 켜진 컨테이너 내부로 들어서면 오래된 유물의 모습을 한 조각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대형 냉장 컨테이너인 작품이 실제로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저온 유통 시스템(cold chain system)을 그대로 구현한 <무거운 짐>은 여름철에도 일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고 이로써 레더버리의 작품은 공간으로 확장되며 냉기를 품은 공기까지도 조형적 재료가 된다. 

<무거운 짐>은 <내부자의 무덤(Insiders’ Grave)>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연작은 레더버리가 2021년부터 작업한 것으로 주식시장 투자자들로부터 빌린 물건으로 만든 일련의 조각 작품이다. 작가는 각 주주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무덤에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물건들을 스튜디오로 가져가 전기를 이용해 얇은 구리도금을 한 후, 조심스럽게 구리판을 떼어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흡사 오래된 무덤에서 발굴된 듯 부식되고 낡아 보이는 조각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손상되지 않은 상태의 원래 물건을 주인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작가는 이것들을 마구 쌓아두거나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어 마치 버려진 물건인 듯 설치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작업의 대상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이라는 것이다. 주식을 통해 자산의 가치를 추상화하는 데 익숙한 이들은 죽음에 동행할 대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죽음과 물질적인 것의 가치에 대한 숙고를 강요당하게 된다. 그리고 곧 자신이 애착하는 물건이 부식된 유물의 외형으로 재현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처럼 주주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자본주의 하에서 죽음과 부의 의미 그리고 소유의 가치에 대해 다각도로 성찰하게 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신작에서 선택된 물건은 다름 아닌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나무 캐비닛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는 1602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식민지를 운영하며 해상 교역과 상업적 교환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2) 고급 목재와 정교한 장식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가구는 유럽과 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고,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레더버리는 신작에서 냉장 시스템이 작동 중인 산업용 컨테이너 안에 구리도금된 캐비닛을 병치함으로써 서로 다른 맥락을 긴밀하게 직조해 내며 비판적 논의의 겹을 더했다.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던 네덜란드의 나무 캐비닛은 식민지에서 조달된 재료로 제작되었고 이는 식민지배 주체의 경제적, 문화적 지배력을 상징했다. 작가는 이 물건을 통해 식민주의가 지닌 억압과 착취, 불평등의 역사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 식량 공급망, 의료 물품 운송 등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 속에서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 시스템과 결합했다. 상품의 보존과 운송에 관련된 산업용 냉장 컨테이너는 글로벌 무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프라 기반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무역이 선진국 중심의 경제 구조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다. 레더버리는 이를 통해 자유 시장, 규제 완화, 민영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을 폭로한다. 식민지 시대에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서 대량으로 자원을 수탈하고 현지 주민들을 강제로 노동에 동원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확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많은 국가가 식품 추출 지대가 된 것을 비롯, 개발도상국의 자원은 더욱 광범위하게 선진국의 소비를 위해 유출되고 있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된 최상품들은 부유한 국가의 국민들이 소비하고, 소비를 통해 생산된 중고 폐기물들은 또다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처럼 개발도상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과거 식민 지배와 피식민 지배의 역학을 보다 교묘한 형태로 재현하며 식민적 착취를 자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Homi K. Bhabha, 1949- )는 식민주의 시대와 현대의 관계를 단절이 아니라 연속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계속되는 “식민적 현재(colonial present)”라고 부른다.3)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서구 중심의 패권주의는 최근의 논의인 ‘디지털 식민주의’나 기후 식민주의, 탄소 식민주의를 비롯한 ‘환경 식민주의’ 등 새로운 종류의 서구 중심 지배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은 자국 중심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식민주의’를 조장함으로써 디지털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같은 글로벌 인터넷 회사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이를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미국의 통제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미국 정보기관에 사용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막강한 미국의 정보력을 견인하고 있다.4)  ‘환경 식민주의’는 주요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자원을 무단으로 채취하거나 오염시킴으로써 환경 파괴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환경적 부채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또한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가뭄이나 해수면 상승은, 대비책을 강구하기 힘든 개발도상국의 재해로 이어진다. ‘부채 정의’를 추구하는 비정부기구(NGO) ‘Debt Justice’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들은 재해 복구를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지게 된다. 이처럼 서구 우위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개발도상국을 끊임없이 ‘부채 식민지화’ 시키고 있다.5) 즉 작품 제목인 ‘무거운 짐’은 식민주의 역사의 억압적인 무게가 오늘날 신식민주의 관행을 통해 지속되고 있음을 은유하는 것이다. 

레더버리는 이처럼 자신의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의 착취 구조를 병치시키고 교차시키면서 과거의 식민주의 구조가 해체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로 변형되어 더욱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내부자의 무덤> 연작의 앞선 작품이 부식된 외형이었던 것과 달리, 도금된 캐비닛은 부패를 늦추는 냉장 시스템 안에서 본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과거 식민주의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또 다른 얼굴로 영속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냉장 공간에 들어가도록 강요받는 감상의 과정이다. 관객이 느끼는 차가운 기운은 시각뿐 아니라 피부의 촉각을 통한 작품의 감상을 유도한다. 레더버리는 냉기를 참고 관람해야 하는 경험을 통해, 쉽지 않겠지만 불편한 역사적 진실과 현실의 모습을 외면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요청한다. 실제로 필자는 추위로 인해 전시 공간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작가는 이처럼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착취 구조 안에 관람객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당연한 듯 누리는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자행하는 착취에 공모하고 있음을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온몸을 통해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시스템을 누리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착취하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 권화영(1971- ) rebonhime@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 1990년대 한국 동시대미술 연구와 한국미술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학술논문으로 「박이소의 설치드로잉 연구: 포스트식민주의 ‘형식’으로서 ‘비형식’」(2023), 「1990년대 한국의 개념적 작업 연구: 박이소, 안규철, 김범 작업을 중심으로」(2024)가 있다. 저서로는 필진으로 참여한 『그들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만든 여성들』(2024)와 리움 미술관 온라인 출판물에 수록된 「김범 작품에 드러난 시대정신 고찰: 《박모》(1995) 연계 좌담과 《‘98 도시와 영상 - 衣食住》(1998)를 중심으로」(202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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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리아나 레더버리(Brianna Leatherbury, b.1995)는 미국 버지니아주 우드브리지 출생으로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2017년 뉴욕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에서 미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에는 풀브라이트의 지원으로 1년간 러시아 모스코바에서 연구했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암스테르담 드 아틀리에(De Ateliers)에 참가했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며, 특히 설치 미술과 비디오 아트를 통해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 홈페이지 https://brianna-leatherbury.com/    작가 인스타그램 @debris__________

2)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1602년에 설립되었고, 네덜란드의 식민지 확장은 이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수리남,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네덜란드의 주요 식민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는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대는 1975년 수리남이 독립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3) Homi K. Bhabha, The Location of Culture, London: Routledge 1994, pp. 126-131 참조.

4) Lu Chuanying, “Bullying Empire: US promotes ‘digital colonialism’ to maintain hegemony, exposes American democracy hypocrisy”, in Global Times (Jun 29, 2023)

5) Kaamil Ahmed, “Rich countries ‘trap’ poor nations into relying on fossil fuels”, in The Guardian (Aug 21, 2023).




브리아나 레더버리, <무거운 짐(Burden)>(2024) 
빌린 오브제에 구리 도금, 구리, 알루미늄 파이프, 냉장실, 
냉장실: 600×600×210cm, 조각: 200×200×60cm.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나무 캐비닛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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