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채
자그마한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웅크려 앉아있다. 얼핏 보면, 아이는 흠뻑 젖어 몸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하며, 왠지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름이 뭐냐고,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은 <오줌싸개>다. 그럼 아이는 지금 발밑으로 실수를 하고, 창피함에 어쩔 줄 몰라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이의 손, 발 형상이 이상한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젖은 것이 아니라 형태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침흘리개> 역시 혀를 내밀고 침을 흘리는 갓난아이를 마치 얼음이 녹듯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작가는 왜 아이들을 녹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그에게 ‘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우습고 창피했던, 지워버리고 싶은 어린 시절의 기억”, 또는 “어린 시절의 사라진 기억”을 “녹는 이미지”로 표현하였다고 설명한다.
<오줌싸개> 합성수지에 에나멜 패인팅 50x60x50. 2009 <침흘리개> 합성수지에 에나멜 패인팅 45x70x33. 2009
정영식이 몸이 녹고 있는 인물을 표현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무기력감에 빠져있던 자신을 모델로 작업한 <무기력>(2007년)에서부터이다. 당시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기력했던 모습,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자신을 벽에 기대어 녹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체가 열이나 습기 등으로 인해 제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하고 물러지거나, 물처럼 된다’는 ‘녹다’의 의미에 주목하여, 자신의 근심, 걱정, 상황들이 얼음이 녹듯, 눈이 녹듯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무기력> 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80x90x150cm. 2007
그러나 작가가 무기력함과 근심이 녹아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한 ‘녹는 이미지’는 이중적으로 인물의 무기력한 심리상태를 잘 드러내 주고 있기도 하다. 한편, <놀고 싶다>(2008년) 시리즈에서는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녹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놀고 싶다>라는 제목은 이들의 놀이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놀고 있는 아이들은 함께 있는 듯하지만, 함께하지 못하고 모두 외롭게 각자 혼자이다. 이들의 무감각한 표정은 이들의 놀이가 재밌지 않음을 말해준다.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이 아이들의 팔과 다리는 조금씩 녹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오줌싸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듯이, 이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고,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놀고 싶다1> 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35x40x55cm. 2008
<놀고 싶다2> 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35x50x55cm. 2008
<놀고 싶다3> 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70x50x60cm. 2008
작가는 녹아내리는 형태로의 변형을 통해 작가 자신의,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이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녹고 있는 이미지는 이전 작업들에서처럼 사라진 혹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표현방식이기도 하며, 또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주는 조형언어이기도 하다.
정영식의 아이들이 드러내는 무기력함, 외로움, 창피함, 두려움은 작가가 녹아 없어져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이것들이 아직은 완전히 녹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녹아 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굳어져 버린 상태인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이 보는 이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무기력함에, 각자의 외로움에 그리고 창피함과 두려움에 어찌 움직여야 할지 모른 채 굳어 버린 듯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로 그것들을 대면하게 해주고, 그것들이 녹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무기력, 외로움, 과거의 지우고 싶은 기억들에 머물며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면하고 녹여내고 나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바램처럼 우리 마음의 무기력도 외로움과 두려움도 용기와 희망으로 따뜻하게 녹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고유경
언제부터였을까 사회적 부담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게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돌파구를 찾기는커녕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고 기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의지되지 못하고 기댈 곳조차 없는 현실에 무너지고 만다. 이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녹다의 사전적 의미는 고체가 열이나 습기로 말미암아 제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하고 물러지거나 물처럼 된다. 감정이 누그러진다 등 많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작품에 맞는 ‘감정이 누그러지다’는 의미를 채택하여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라지는 모습을 형상이 알 수 없게 ‘깨트림’이라는 단어로 사용하질 않고, ‘녹는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단어 선택은 작품의 형상모습을 온전히 보존케 하려 함이다. 이런 본인의 작품 제작 스타일은
■ 작가. 정영식
갤러리K 젊은작가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 정영식’은 ‘녹음’이 지닌 현상적인 의미보다는 심리적인 의미를 자신의 작품에 담고 있으며, 개인의 성찰을 통해 현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을 담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봄과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바라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치유의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 갤러리K. 큐레이터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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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갤러리k 젊은작가 공모전 _ 정영식 조각전 _ ‘Melting Point’
전시기간: 7월20일(금요일) - 8월2일(목요일) / 오프닝: 7월20일 5p.m.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463-10(예술의 전당 맞은편)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B1.
전화: 02 2055 1410 / 홈페이지: www.galleryk.org / 이메일: gallery_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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