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시선 너머’
2025년 상반기 기획공모 선정작가전
2025. 01. 01 (수) ~ 2025. 01. 07 (화)
1. 전시 개요
■ 전 시 명: 2025년 상반기 갤러리 도스 ‘시선 너머’ 기획공모 선정작가展 이 원 ‘없음으로 있는 것들’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F)
■ 전시기간: 2025. 01. 01 (수) ~ 2025. 01. 07 (화)
2. 전시 서문
정신적 행위의 실천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표면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 너머로 이면에 담긴 뜻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동양 미술의 지난한 역사를 거쳐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정신이다. 물리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존재와 세계는 이미 수많은 과학적 정보와 사실을 기반으로 공공연하게 노출되어 왔다. 이 원 작가는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외형에서 경계 없이 자유로운 방식을 지향한다. 머릿속으로 작업 과정을 설계하고 완성까지 이르는 단계를 전부 건설하려 하기보다는 본인이 느끼는 심신의 상태와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 계획한 범위 밖의 영역을 함께 아우르고 본능에 따라 진행되는 즉흥성에 초점을 두며 열린 해석을 마련한다.
우리가 눈과 귀, 촉감으로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현실성을 근거로 한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기에 대부분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하며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눈으로 직감하는 대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할 것이라는 사고는 이따금 새로운 의문을 내포하며 다소 위험을 수반하는 행위일 수 있다. 형식과 이성에 제한된 개념으로 이면의 것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일일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는 명백하고 자명한 사건 사고들에서도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내지는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며 이러한 취지를 실천하고자 추상의 형태를 구현한다. 학문과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능성은 늘 남아있고 직접 확보한 지식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범위 안에서 한정된 효력을 지닌다. 개인이 관리할 수 없는 세계에 잠식된 정보의 부산물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이자 새로운 창작을 떠올릴 수 있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정해진 규정과 사회적 시선에 가로막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인식의 오류로부터 구속되지 않는 예술을 목표로 작업에 임한다. 작품의 중심 소재로는 먹을 사용하며 내재된 담백함과 정신성을 확장하고 안료의 자연적인 물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재료 본연의 성질로 시각적 미학을 공유하고 삼라만상의 근원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함유하려는 취지를 알 수 있다. 나아가 석고 가루를 함께 활용하여 작품의 가시적 의미에 밀도를 더하고 물과 먹을 복합적으로 다루며 석고의 덩어리와 물의 수분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세밀히 포착한다. 작품에 드러나지 못한 잔여물은 해체하여 본래의 양상으로 복구한 뒤 재사용된다. 해당 과정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 진행 끝에 자리하는 소멸의 순환을 뜻하며 작가는 이 순환을 작업의 일환으로 대입한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면 표면 위 눈에 띄는 물성과 더불어 재료를 선택한 이유와 각각의 소재를 결합하고 제작하는 단계 하나하나로부터 고유의 철학이 드러난다. 작가는 물질적인 것과 그 이면의 공간을 구분 짓지 않고 한데 아울러 수용하며 화폭에 가감 없이 노출한다. 한없이 유약한 사람의 내면 한구석을 지나치지 않고 진실한 작업을 이어가는 태도는 관람자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와 살아가는 현재, 살게 될 미래의 가치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작품에서 인공 수단을 뛰어넘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각각의 현상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작가는 예술을 매개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되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유지하고 일정한 틀과 격식에서 한발 물러서며 진정한 자유를 좇는 자세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자유분방하게 흐르고 어우러지는 작품을 토대로 삶에서 가져야 할 이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유정의 시간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91×65cm, 2024
겨울 창문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53×45.5cm, 2024
말의 흔적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22×27.3cm, 2024
그 목소리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38×45.5cm, 2024
untitled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53×53cm, 2023
향
패널에 먹 외 혼합재료, 60.6×72.7cm, 2024
3. 작가 노트
유모취신(遺貌取神)을 추구하는 놀이로써의 먹그림
예로부터 동양미술에서 중요시한 것은 외형의 재현이 아닌 그 이면에 내재한 정신성의 현현이다. 그러한 추구성을 바탕으로 추상회화 작업을 전개한다. 가시세계의 객관적인 묘사가 아닌, 형태를 초월한 에너지를 가시화하는 유희로써의 작업이다. 자유로운 정신과 목적 없이 노니는 태도로 그리는 그림으로,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개념에 부합한다. 사전에 무언가를 계산해서 계획하고 인위적으로 공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임한 시점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표출되도록 가능성을 열어두고 본능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작업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 심겨진 것들이 삶의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아될 것을 믿고 어떤 것이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하면서 그리는 그림이다.
세상의 사물, 생물, 사건 따위에 대한 감각과 지각은 절대적이고 사실적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가변적인 것에 가깝다. 명사로 정의 내려진 의미와 시지각으로 인지되는 형상에 의해 판단하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담아낼 수 없는 복합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경험과 지식이 늘어갈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고 관점이 명료해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의 앎에 대한 의심이 늘어나고, 불확실성을 믿게 되고,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다. 구상적인 이미지가 제시하는 사실 이면의 추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진실에 관심을 갖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이유이다.
입체물 제작에 주로 쓰이는 재료인 석고 가루를 평면 작업에 이용한다. 석고가 바탕이기도 하며 안료이기도 한 셈이다. 물에 석고 가루와 먹을 배합해 안료를 만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분이 증발하고 스며들어 농도가 짙어지며 고체 형태로 굳어간다. 그리기에 적합한 순간을 포착하고 적절하게 이용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굳어버린 석고는 깨뜨리고 빻아 원래대로 가루를 만들어 처음과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는 식물, 동물, 인간의 생장과 소멸, 순환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수분을 머금고 생명력을 가지다가 생장 주기에 따라 말라가고 죽어 굳어지면 다른 생명의 양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삶과 유사한 모습으로, 장자의 자연관과 일치하며,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은 곧 삶이라는 메시지를 상기 시킨다. 석고 가루를 만지면서 골분을 자주 떠올린다.
반야심경에는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는 잘 알려진 법어가 있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고 직역한다. 물질적인 세계와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획’과 ‘여백’이라는 것이 다르지 않고 결국 같은 것이라고 보기에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화면을 구현한다. 획이 없으면 여백이 없고, 여백 없이 획이 없다. 다시 말해 획이 여백이 되고 여백이 획이 되는 그림인 것이다. 이렇게 획과 여백의 하나됨, 안료와 바탕의 하나됨, 평면과 입체의 하나됨을 추구한다.
4. 작가 약력
이 원│WON LEE
Email: heavysummerrain@naver.com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재학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동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2025 없음으로 있는 것들, 갤러리 도스, 서울
2025 The Playfulness of Temporality, 유예재, 서울
2025 Flowingly, 설미재 미술관, 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