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 최석운 <팡센의 질주-A gallop in Fangxian>展
전시 기간 : 2025.01.04(토)-01.25(토)
관람 시간 : 화~토요일 10am~6pm
전시 장소 : 갤러리 나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
문 의 : T. 02-725-2930, E-mail. gallery_now@hanmail.net
당계마을의 개들, 80x120cm, Acrlyic on canvas, 2024
네남자의 여름, 120x200cm, Acrlyic on canvas, 2024
[작가노트]
팡센에서 보낸 3개월
나는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중국 내륙의 후베이성 스옌시 팡센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번 작업들은 3개월 동안 대부분 팡센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낯 선 곳에 서면 나는 흥분이 된다. 다섯 차례의 경험이 그랬고 점점 체적화 되어 가는 느낌이다. 의도한 고립에서 생각하지 못한, 내가 못 본, 못 느낀 것들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떠나 다른 장소에 거처를 만들어 작업한다는 것은 산만하고 집중력을 잃게 할 것이라는 선입감이 있었다. 기우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은, 안정되고 익숙한 기존작업실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더욱 그렇다. 특히 오랫동안 한 우물 속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고 작업의 행로가 강으로 가는지 산으로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면 레지던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고 새로운 영감들을 만나게 한다.
내가 머문 곳은 팡센의 중심가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구도시를 새로 조성한 예술특구이다. 대부분 베이징에서 이주해온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전문인들과 특구를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평온하고 고요한 곳이다. 바리게이터로 구획된 작업실을 나서면 내가 살았던 유년기 시절 겪고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 십 년 전의 우리 모습과 현재의 사람들 그리고 첨단적인 것들이 섞여 있다. 이른 아침에는 보호자의 손을 잡은 유치원생부터 등교하는 중고교생이 골목을 메운다. 이들과 야채, 고기, 과일 등을 파는 사람들과 한데 섞여 북새통을 이룬다. 도로변의 작은 식당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거나 음식을 포장해가려는 이들이 줄지어 있다. 나는 그들 틈에서 아침 꺼리를 위해 장을 보거나 식당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과 같이 대열에 서서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한낮의 거리는 고요하다. 무더위로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오후. 작은 골목 안 그늘에 어린 소년들이 어울려 있다. 어두운 골목은 건물 사이를 비집고 비치고 햇빛과 대비 되어 보였다. 이렇다 할 놀이 기구 없이 바닥에 뭔가를 긁적이거나 손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장면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아주 오래 전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겹쳐 보였다. <팡센의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동안 골목 안을 비추던 햇살 속에 마치 그들의 밝은 미래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팡센에서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거나 한두 시간이 소요되는 외곽의 작은 마을을 걸었다. 목재로 된 대문에는 칼을 든 채 말을 타고 달리는 두 명의 장수가 그려진 인쇄물이 붙어 있었고 그 색상이 붉어 쉽게 눈에 띄었다. 그 두 명의 장수는 중국 당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진경과 위지공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여러 집 대문을 지키며 평안과 무병을 준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 벽에 걸릴 <질주>라는 제목의 두 작업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두 장수를 팡센의 희망찬 새로운 미래의 젊은이들로 바꿔놓었다.
이른 아침. 군점고진이라는 마을에 갔다. 마을 초입에는 제법 큰 시내가 흐르고 냇가를 가로 지르는 아치형의 다리 옆에 남자들이 앉아있다. 편한 복장으로 보아 더위를 피해 이른 시간 마실 길에서 만났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오래된 동네 친구처럼 보인다. 동네 사람들의 근황, 개인적인 고민, 가족들의 건강 등을 대화로 삼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남자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 갈 것이다. 냇가에서 여인들이 대화를 하며 빨래를 한다. 군이 오랜 기간 점령해 있었다는 유래를 가진 이 동네는 작은 골목길로 불규칙적으로 이어져 있고, 오래된 건물들이 흥미롭다. 반갑게도 한글로 된 입간판도 보이고 옛 모습을 유지 한 채 다듬어져 관광지로 조성될 것 같다. 문밖에는 더위를 식히는 노인들이 앉아있다. 몇 집 지나니 낮고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엄마가 딸의 머리를 빗겨준다. 잠에서 덜 깬 <머리 빗는 모녀>가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군점현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계산 하는 여주인>과 잠옷을 입은 채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와 개>를 보았다.
당계마을은 작업실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처음 그곳을 갔을 때는 마을 위의 저수지에서 거꾸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묘미가 있었다. 논과 밭이 한 여름의 녹음으로 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집들이 평화롭게 보였다. 두번째로 이 마을을 찾았을 땐 깜깜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만 보이고 여름 벌레 소리와 습기 먹은 풀 냄새만 맡았다. 산인지 물인지 모른 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다녀왔다. 다소 밋밋했던 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유독 많았던 주인 없는 개들 때문이었다. 무질서한 듯 엉켜 있던 건물들과 휑한 벌판 사이에 <당계마을의 개들>이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밖에 함께 모여 운동을 한다. 아니 춤을 춘다. 자리가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요란한 음악소리에 맞춰 찌는 듯한 무더위를 정말 날려 버릴 것처럼 격정적으로 몸을 흔든다. 빗물 같은 땀을 흘리며. 처음에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한여름 밤의 댄스>는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청봉대열곡. 글자 그대로 높고 푸른 산봉우리가 두부 자르듯 나누어진 계곡이다. 외국인 출입이 제한되었으나 용케 입장해서 반나절 동안 계곡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었다. <청봉대열곡의 책 읽는 남자>를 떠올린 것은 하산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시원하게 흐르던 계곡 옆에 넓고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옆의 안내판에 적힌, 독해가 어려운 한자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 바위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면 높은 관직에 오르고 큰 인물이 된다는 뜻이라 해서 모두들 한번 씩 바위에 올라 본다는 것이다. 나는 큰 나무 숲 아래가 시원해 보이긴 했으나 계곡물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이번 레지던시를 떠나기 전 마음먹은 것이 있다. 오랜 기간 나의 그림 그리기의 의도가, 습관적으로 대입된 틀 속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오래된 고민을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이 결의를 팡센 에서, 감금된 상태에서 시도를 해 보겠 노라고...
-2024년 12월 최석운
정오의 팡센, 100x120cm, Acrlyic on canvas, 2024
[서문]
최석운의 서양미술을 흉내내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결의는 조선후기의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에 열광하며 일상을 위트 있게 비튼,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그려냈다. 민주화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뒤덮고 있던 시대적인 격동기, 사사로운 것을 그림에 올리지 않았던 시대를 보내면서 산만하고 불안정했던 청년기를 보냈던 최석운은 한없이 무력 했다. 심각한 이야기들을 나 하나쯤은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만화나 삽화 같은 쉬운 형식으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의 신변잡기를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즉 “나도 그리겠네” 같은 쉬운 형식으로 일상을 풀어내는 작품을 한지 40년. 1996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던 46점이 모두 솔드아웃 되면서 최석운은 소위 ‘팔리는’작가가 된다.
‘작가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짙어 지면서 해남, 이태리, 중국 등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작업장을 옮기면서 최석운에게 더 짙게 스민 화두는 바로 ‘일상’이었다. 한국이나 이태리, 중국에서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눈을 째리면서 관찰해온 개개인의 감성을 극대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그의 촉수에 걸려든 파편들 같은 삶의 리얼리티 Reality는 서사가 있는 해석이었다. 최석운에게서 일상에서의 사람들,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유하는 일상에서 ‘본다’는 것은 당시의 시공 즉 어떤 시, 공간 안에서 인지되는 공명이다. 원근이 사라지고 그의 그림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에너지가 부딪치고 때로는 비켜가면서 드러난 그것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었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어떤 장면, 작품 작품에 이야기가 담겨있고 형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최근 3개월간 다녀온 중국 에서였다. 그동안의 수많은 자신의 그림들에 자신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중국에서의 그림이 그에게는 새로운 변곡점이 될듯하다.
그의 최근작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대상들은 채워지지 않고 그림의 일부분이 비워져 있다. 이는 그가 그동안 외부의 시선과 평가, 자신의 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놓아주고자 선택한 방식이다. 리히터는 말했다 '나는 실재에 대해 더 이상 정확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희미함, 불확실함, 일시성, 단편성 등을 추구한다. 이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최석운의 어린아이와 같은 그림은 마무리되지 않으므로 더욱더 낯선 호기심이 유발되고 무의식과의 접점을 유도하는 포인트로 다가온다. 완성되지 않은듯한 그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차원의 의식과 접속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입의 효과가 있다.
일상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이고, 자신을 관찰하고 인간을 관찰하면서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이 작가라면 최석운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통로가 아닐까?
-이순심 | 갤러리나우 대표
한낮의 샤워, 120x100cm, Acrlyic on canvas, 2024
[평론]
이야기 하는 그림의 힘
1. 최석운의 근작은 그가 최근 몇 년간 전라남도 해남에 딸린 작은 섬 임하도에 체류하면서 그린 그림과 40여 일간 이탈리아 시칠리아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살고 있는 양평 주변에서 접한 일상의 소재들이 함께 하고 있다. 캔버스나 종이 위에 아크릴릭, 또는 과슈가 사용되고 있으며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한결같이 나름의 이야기를 안고 있다. 그러니까 풍경/인물 그 자체가 아니고 그것을 통해 서사를 발생시키는 것, 모종의 은유적인 이야기를 기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에게 풍경의 경우 그 자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이른바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등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없어 보인다. 그에게 풍경은 그동안 그려온 인물과 동일한 대상이 된다. 이야기는 세상을 유의미하게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항상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목도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도 보고, 삶을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느냐, 이야기하느냐를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이야기는 점차 상실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고 향유하고 정서적충일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고독과 고립에 기반한 독백만이 이상한 형태로 증식 한다. 최석운은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여전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방법론은 쉽고 재미있고 가볍게 활용된다. 그래야 자기 이야기가 소통되기 용이하다고 믿는다. 그는 자기 삶과 기억에 의지해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것으로 만드는 작가다.
2. 근작에서 작가는 풍경만을 단독으로 설정해서 다루고 있다. 녹색의 풀과 수직으로 직립한 나무, 붉은 황토, 흰 구름 덩어리와 파란 하늘, 색색의 지붕을 지닌 장난감 같은 박스형의 집, 점경으로 자리한 인물과 납작하게 엎드린 개가 자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최석운의 그림에서 풍경이 그 자체로 그려진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는 주로 사람을 중심으로 화면을 조성해왔다. 풍경은 부차적이거나 후경에 머물렀거나 부재한 편이었다. 해남에서 그려온 풍경을 우선 살펴보면 브로콜리나 감자 덩어리를 닮은 나무는 풍경 안에 있으면서도 독립된 존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펼쳐진 땅/밭도 색면으로 분할되면서 다양한 색채와 각기 다른 붓질의 방향과 미묘한 질감의 차이로 마감되고 있다. 부풀어 올라 팽창하는 듯한 나무 덩어리는 대지에 뿌리 박고 자연스레 밀고 올라와 자기 생의 영역을 자연스레 펼쳐내고 있는 모종의 당당함으로 굳건해 보인다. 그것들은 저마다 싱싱하고 한껏 부푼 얼굴로 ‘빵빵’하게 자립한다. 나무 옆에 혹은 땅의 어느 자리에 박힌 작은 집들 역시 나무처럼 제자리에서 자기 존재성을 소박하게 비추고 있다. 그런데 풍경은 어딘지 좀 황량하고 스산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드넓은 땅에 몇 채의 집, 몇 그루의 나무만이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을 뿐이거나 사람이 부재하거나, 혹여 있다해도 하나, 둘 정도의 사람만이 점경으로 존재한다. 넓게 자리한 풍경에 작게 그려진 인물은 묵묵히 밭일에 몰두할 뿐인데 해야 할 일과 남은 일은 저 광활한 자연풍경만큼이나 대책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것의 헤아릴 수 없는 넓이와 부피는 작은 인물의 몸과 가슴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일하는 사람 옆에는 개만이 바닥에 밀착해 노동하는 사람의 심란한 마음과 대조적으로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다. 얼기설기 그물망처럼 혹은 임의적으로 그어놓은 막대기 같은 선을 닮은 밭의 가장자리 선, 분할선은 인간의 경제적 욕망으로 인해 형성된 선이자 소유의 경계선이고 무질서한 자연을 인간의 통제 아래 굴절시킨 혹은 타협점을 찾는 선들이기도 하다. 유기적으로 조각조각 난 그 선들이 나무와 대조를 이루며 펼쳐진 이런 풍경도 자연에 순응하거나 그와 부합하려는 한국인의 마음과 지혜의 일단이 감지되는 풍경이자 거대한 자연의 위용과 막막함에 개입하면서 결코 굴하지 않고 생을 도모하는 모종의 감각적인 위트가 번득이기도 하다. 이것도 크게 보자면 생의 낙관성이다. 최석운이 늘상 자신의 그림에서 찾고자 했던,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3. 같은 풍경이라 해도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그려온 풍경은 길게 하늘로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와 흰 벽에 작은 창을 지닌 집들만이 등장한다. 화면 상단을 뚫고 나가려는 듯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수직성을 내세우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거진 숲과 장난감 같은 집들이 흩어져 있거나 바다를 뒤로 하고 노을진 석양과 농구공만한 나무들이 줄을 이어 서있다. 이국적 정취나 낭만성이 짙은 풍경이 감촉되는 그림이다. 불투명 수채화와 같은 맛이 짙게 감도는, 과슈 특유의 회화적 특성이 강하게 검출된다. 아크릴릭과 과슈를 함께 쓰고 있는데 나로서는 과슈 그림이 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한 맛을 구현하는 데 보다 효과적인 것 같다.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그려온 그림은 사실 풍경화보다 그곳에서 접한 다양한 인물 군상시리즈가 더 많고 좋기도 하다. 최석운은 그의 날카롭고 예민한, 가는 눈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포착해서 간추려 그리는데 장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순발력으로 길어 올린 것을 그에 맞는 표현 방법론으로 빠르게 밀고 나온 것들이 역시 좋다.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마시는 여행자를 그린 그림에서 특히 빵을 씹고 있는 남자의 다소 멍한 표정이라든가 공놀이를 하는 남녀의 몸과 손의 포즈와 그들이 향하는 시선,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는, 단발머리에 가까운 파란 눈을 소유한 여자의 미소와 배에 앉아서 위로 치켜 뜬 시선으로 화가를 바라보는 시칠리아 어부, 머리에 각종 꽃으로 만든 관(화관)을 얹은 젊은이의 얼굴 등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종이에 순발력 있게 그려진 드로잉에 해당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또한 매력적인 회화의 맛을 지닌 것들이기도 하다.
4. 인간은 인간대로, 자연 속의 나무와 땅과 집들은 또 그것들끼리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 삶이고 풍경이다. 경기도 양평이나 전라남도 해남,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사람이 사는 방식이나 자연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그곳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리면서 모종의 이야기/서사를 그려나간다. 그림으로 들려준다. 오늘날 우리는 공동체의 서사를 망실한 시대를 살아간다. 인간의 삶과 자연에 대해 공유하던 이야기를 더는 미술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소박하고 작은 이야기지만 최석운의 그림에는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이모저모가, 소소한 생의 편린이 흩어져 있고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자리가 박혀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여전히 지속해온 생의 역사이고 기억이다. 작가는 그 기억이 불현듯 환기되어 출몰하는 어느 순간의 얼굴과 몸짓, 풍경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박영택 | 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
군점현의 모녀, 80x60cm, Acrlyic on canvas, 2024
무대위의 모녀, 120x100cm, Acrlyic on canvas, 2024
[약력]
최석운 CHOI, SUKUN (崔錫云)
부산대 미술학과,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졸업
주요개인전
2024 A gallop in Fangxian展, 갤러리나우, 서울
JiFU 미술관, 후베이, 중국
갤러리 마리, 서울
2023 가람화랑, 서울
갤러리 이주, 서울
2021 갤러리 나우, 서울
2020 행촌미술관, 해남
갤러리나우, 서울
2019 갤러리이주, 서울
2017 노리갤러리 , 제주
2014 해와예술공간, 광주
통인화랑. 서울
2012 국립중앙도서관, 서울
2011 통인화랑, 서울
2010 갤러리로얄, 서울
2009 부산공간화랑
2007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5 가람화랑, 서울
2003 부산공간화랑
2002 가람화랑, 서울
2001 부산공간화랑
동원화랑, 대구
2000 샘터화랑, 서울
1998 포스코미술관
1997 샘터화랑, 서울
1996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1995 샘터화랑 ,서울
1994 샘터화랑, 서울
부산공간화랑
1993 금호미술관, 서울
샘터화랑, 서울
1991 한선 갤러리, 서울
1991 갤러리누보 ,부산
1990 사인화랑, 부산 외 다수
주요단체전
2024 KIAF (COEX, 서울)
2023 화랑미술제 (COEX, 서울)
2022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몽유임하전 (행촌미술관, 해남)
김춘수탄생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광화문교보문고, 서울)
2021 태양에서 떠나올 때 (전남도립미술관. 광양)
거대한 일상-지층의 역전 (부산시립미술관)
꽃과 함께 (정부서울청사)
2020 회화의 수사학 (뮤지엄SAN, 원주)
여수국제미술제 (여수엑스포D전시홀)
천사의 바다정원에 핀 맨드라미 (저녁노을 미술관, 병풍분교장, 신안)
2019 영남문화의 원류를 찾아서-가야 김해 (신세계갤러리, 대구)
공재, 그리고 화가의 자화상 (행촌미술관, 해남)
2018 세계 한민족 미술대축제-우리집은 어디인가? (예술의전당.서울)
한중일 현대미술제 삼국미감전 (삼탄아트마인, 정선)
2017 한,미얀마 현대미술 교류전-Platform of the Peace
(New Treasure Art Gallery. Yangon)
한국의 얼굴 (정부서울청사)
물 때-해녀의 시간 (제주도립미술관)
2016 함부르크 아트페어
절망을 딛고 피어난 꽃, 청록집 (교보아트스페이스. 광화문)
2015 중심축 경계를 넘어(성선갤러리, 베이징)
아빠의 청춘 (광주시립미술관)
독도,물빛 (대구문화예술회관)
2014 21세기 풍속화전 (월전미술관)
이상 탄생100주년 문학 그림전(교보문고, 광화문)
고원의 기억 (삼탄아트마인, 정선)
2013 실크로드를 그리다-경주에서 이스탄블까지 (대구mbc특별전시장)
2012 Artstic Period (인터알리아,서울)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 (전북도립미술관)
2011 한국현대미술의 스펙트럼 (타이페이 카오슝 시립미술관)
한,중현대미술전 (Sky Moca Museum, 베이징)
2010 웃음이 난다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의 힘(경기도미술관)
한국의 길-올레, 재주올레전 (제주현대미술관)
2009 현대미술로 해석된 리얼리즘 (경남도립미술관)
농성동 부르스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해치, 서울을 나들이하다 (광화문 광장. 디자인올림픽 잠실종합운동장)
Disversity-Contemporary art Asia to Europe (비엔나, 오스트리아)
근,현대로 보는 해학과 풍자 (안양문화예술재단, 알바로시자홀))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아트대구
아시아 호텔톱갤러리아트페어 (동경)
베이징, 멜버런, 함부르크, LA아트페어등
레지던시
2024 팡센 예술구 창작스튜디오 (후베이, 중국)
2021 행촌문화재단 금요일의 섬 (해남, 한국)
2019 행촌문화재단 이마도스튜디오 (해남, 한국)
2011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스튜디오 (베이징, 중국)
2010 제주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제주, 한국)
2008 가나아트부산 창작스튜디오 (부산, 한국)
작품소장
경기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금호미술관, 기당미술관, 토탈미술관, 아트뱅크
제주현대미술관, 행촌미술관,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 거제시, 아주가족
사계절출판사, 로얄앤컴퍼니, 전등사, 법무법인 태평양, 신안군, 카멜리아 힐 등
생각하는 남자, 116x81cm, Acrlyic on canvas, 2024
팡센의 아이들, 120x100cm, Acrlyic on canva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