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현대미술사 속 잊혀진 수집가의 부활
- 2025년 을사년 새해 OCI미술관 소장품 전시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 1월 16일 개최
- 2010년 개관 이후 15년 만에 소장품 <윤상 수집 현대화가작품전 기념 서화첩>을 최초 공개하여 1950년대 한국 현대 미술사의 공백 재조명
- <윤상 서화첩>을 중심으로 조선~근현대 서화 및 국립현대미술관, KTV 국민방송,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외 개인 소장품 등 130여점 출품
- 70여 년 전 열린 <윤상 수집 현대화가작품전>에서 만난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뮤-즈)들이 남긴 다양한 작품과 기록을 통해 온기와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전시
OCI미술관에서는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뱀의 해를 맞아 소장품 <윤상 수집 현대화가작품전 기념 서화첩>을 최초로 공개하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잊혀진 개인 수집가, ‘윤상(尹相)’ 의 존재와 의미를 되살린다. (이하, <윤상 서화첩>)
신문 자료 외 구체적인 행적이 드믄 개인 수집가 윤상은 한국 전쟁 후 수집한 한국 현대 회화 작품을 모아 1956년 7월 21일부터 29일까지 9일 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제1회 윤상 수집 현대화가 작품전>을 자신의 이름을 내새워 개최했다.(이하, 〈윤상 전시〉)
윤상의 요절로 단 1회에 그친 이 전시에는 고희동, 이상범, 도상봉, 천경자, 김환기, 장욱진 등 당대 유명 한국 동ㆍ서양 원로, 중진, 신진 화가 49인의 작품 64점이 출품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미술계에서는 현대미술관의 필요성도 제기될 만큼 의미가 컸다.
<윤상 서화첩>은 일종의 방명록으로 전시를 찾은 출품 화가들 뿐 아니라 1956년 당시 전시를 관람한 대한민국의 공예가, 서예가, 배우, 문학가, 음악가, 영화감독,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문화 예술인 및 국어학자, 기업가 등 104인이 다채롭고 생생한 그림과 기록을 남겨 현대 미술사 뿐 아니라 현대사 연구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올해로 개관 15주년을 맞이한 OCI미술관이 그동안 수집, 보존처리, 조사연구를 거쳐 처음 공개한 <윤상 서화첩>은 1950년대 한국 현대 동ㆍ서양화단 뿐 아니라 당시 문화예술계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시한 「공사립미술관 보존지원사업」에 선정되어 7개월여에 걸쳐 클리닝, 표지 배접, 재장정, 포갑 제작 등의 보존처리를 했다.
OCI미술관에서는 서화첩 기록자들에 대한 이름, 생몰년, 직업, 이력 등 기초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한학자 하영휘 전)성균관대학교 교수의 탈초 및 감수를 거쳐 2010년 입수 이후 15년 만에 공개하고, 한국 현대 미술사 연구의 공백을 채우길 기대한다.
<윤상 서화첩>에 드러난 인물 백여 명 중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 동ㆍ서양 화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 윤상의 수염을 강조한 초상화를 비롯, 정물, 인물, 풍경 등 다채로운 축하 그림과 기록을 남겼다. *동양화가 및 문인화가 17인 및 서양화가 38인 등 총 55인 화가들 뿐 아니라 서예가 4인, 사진가 3인, 공예가 2인,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 문학가 10인, 작곡가 등 음악가 4인, 국어, 한문학, 역사학 등 학자 3인에 더해배우, 영화감독,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기업인, 독립운동가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그림과 기록을 남겨 1950년대 대한민국 학술 및 문화계의 인적 관계 동향이 파악된다.
그 외에도 생몰년과 직업, 성명 등이 미상인 인물 20여명이 윤상의 초상화를 비롯해 다양한 꽃 그림 및 축하 기록을 남겨 향후 지속적인 연구 여지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윤상 서화첩>에는 1956년 전시에 출품된 작품 64점 중 작품 7점의 신문 스크랩 사진이 남아 있으며, 당시 전시 리플릿 자료를 통해 장욱진의 <가족>(1954년)과 유영국의 <도시>(1955년) 등 2점의 현존이 확인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최 《장욱진 회고전》에 출품된 개인 소장, <가족>은 「윤상 전시 리플릿」(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기록 및 <윤상 서화첩> 속 신문(연합신문 추정) 스크랩 사진을 통해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욱진의 <가족>은 애초에 윤상 소장 <마을>이었고, 이는 현대 미술 작품이 창작되고 주인과 제목이 바뀌며 소비된 이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번 전시에 최초로 공개되는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의 <도시>(1955년)는「윤상 전시 리플릿」의 33번 작품 유영국의 <都市>와 제목이 일치한다.
유영국은 자연 소재인 ‘산’을 주로 그린 추상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도시>를 통해 인공적인 풍경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OCI미술관에서는 유영국의 추상화와 함께 <윤상 전시> 출품 화가이자 <윤상 서화첩>에 기록을 남긴 이상범의 수묵화 <모운>(1938년)과 비교 전시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1956년 당시 파격적인 전시 분위기를 재현한다.
1950년대는 한국 화단이 변화와 갈등을 겪던 시기였지만, 세대와 계파를 따지지 않고 작품을 수집ㆍ전시한 윤상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일한 유산인 이 서화첩은 분열로만 비춰진 당시 미술계의 화합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윤상은 전시가 끝난 후 신문에 기고한「수집가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3, 4년 간 수집한 현대화가작품 60여점 덕에 ‘수집가’라는 이름이 생겼다며, 이 전시가 연구자들에게 참고가 되고, 화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했다.
<윤상 전시>가 열린 1956년은 당시 현대 미술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홍대파(대한미술협회)와 서울대파(한국미술가협회)의 이른바 ‘《국전》분규’가 일어났던 시기였으나 윤상이 개인적 취향으로 수집한 작품 전시는 그와 상반된 화합의 양상을 보인다.
○「윤상 전시 리플릿」의 소개글은 대한미술협회 위원장 도상봉이 작성했고, 동문인 원로 화가 고희동의 작품이 1번으로 전시되었다. 그러나 1955년 발족한 한국미술가협회 회원인 박득순, 장욱진, 문학진, 이세득, 김병기 등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윤상 전시>에 걸렸다.
도상봉은 리플릿 서두에서 ‘화단의 원로 선배를 위시하여 중견, 신진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전시)행사로 중대한 의의를 가져온다’고 소개했다.
<윤상 서화첩>에는 당시 서양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그린 사군자 등 동양화풍의 그림이 남아 있어 이들의 폭넓은 미술 소양을 보여준다. 특히, 라일락 정물화로 유명한 도상봉이 서화첩에 남긴 수묵 매화 그림은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는 계파와 세대를 초월해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는 당시 한국 현대화단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 범주를 넓혀준다는 의의가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대한민국 사진계의 거장 임응식이 촬영한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이다. <윤상 서화첩>에 축하 기록을 남긴 임응식은 평생에 걸쳐 출품 화가 49인 중 77%에 해당하는 38인의 사진을 남겼다. 그 밖에도, <윤상 서화첩> 관련 다양한 분야 예술가 17인의 사진도 새롭게 공개된다.
임응식은 한국미술가협회에서 새롭게 미술 분야로 포용한 사진부 소속으로 <윤상 전시>에 방문하여 전시를 축하하는 기록을 남겼다.
1956년 당시는 사진이 점차 미술 분야로 인정되던 시기로 <윤상 서화첩> 기록은 화가와 당시 사진가들과의 밀접한 교류도 보여준다.
조선 왕실 가문 출신 사진가였던 이해선 및 사진가 이병삼이 <윤상 서화첩>에 ‘백자’ 정물화를 그려 전시를 축하해 당시 사진계의 인적 동향이 파악된다.
임응식은 1950년대 이후 평생에 걸쳐 촬영한 예술가들의 초상을 모은 사진집『풍모(風貌)』(1982년)를 발간했는데, 대부분의 인물이 <윤상 서화첩>과 관련된다.
전시 출품 38인의 화가의 초상 외에도 <윤상 서화첩>에 기록을 남긴 시인, 소설가 등 문학가, 작곡가 등 음악가, 배우, 사진가, 공예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17인의 예술가들의 사진 총 57점(임응식 사진 포함)을 전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임응식 사진과 차별화하여 이번 전시에서는 손자 임상철(임응식사진아카이브 대표)이 물려받아 정리한 새로운 사진도 선보인다. 참고사진 11
총 3부로 구성된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 전시에서는 잊혀진 수집가 윤상과 그를 기억하는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작품을 중심으로 AI시대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희망한다.
1,2부에서는 <윤상 서화첩>과 관련하여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OCI미술관 소장 청전 이상범, 고암 이응노, 수화 김환기, 운보 김기창, 소정 변관식, 구룡산인 김용진, 이당 김은호, 춘곡 고희동, 우청 황성하 등 한국 근현대 동ㆍ서양화가들의 작품을 내놓는다.
3부에서는 조선 전기인 1553년 동갑내기 문인 관료들이 모여 60세 생일을 축하하고 그림과 시로 남긴 <성안공계축갑계좌목>도 최초로 공개한다. 이를 통해 500여년 전 사람들도 오늘의 우리와 같이 나이 먹어감을 아쉬워하며 ‘동양의 뮤-즈’, 신선과 같이 영원불멸의 삶을 꿈꾸었음을 되새기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실력 있는 젊은 미술 작가들의 등용문으로서 15년 간 꾸준히 OCI미술관을 일궈 온 이지현 관장은, 잊혀질 뻔 했던 수집가 윤상을 추억하게 해준 예술가들의 작품과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을사년 새해에는 갈등을 넘어 온기 가득한 변화의 시기로 뜻깊게 출발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