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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자 : 인연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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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환경과 인간이다. 자연의 신비로움에서 발견되는 유기적인 선의 리듬과 형태를 의식적이 아닌 상태에서 받아들여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일상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서 느끼는 순간적인 인상을 소중히 하여 이러한 세계를 입체화시키는 작업을 금속이라는 재료를 통해 표현한다.”—김홍자





현대화랑은 한국 금속공예의 거장 김홍자의 개인전 《인연의 향연(The Feast of The Fates)》을 2024년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연장 개최한다. 1994년 갤러리현대에서의 개인전  《김홍자 금속작품전》 이후 30년 만에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제작된 금속 조각을 비롯하여 섬세함이 돋보이는 주얼리, 웅장한 의례용 그릇, 화려한 장식의 거울까지 작가의 지난 30여 년의 예술적 여정을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김홍자는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1년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로, 금속공예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1903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1913년에 하와이로 이주하였고, 1928년에는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김홍자는 의류 사업을 하던 부모님 아래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전공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한국을 떠나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Indiana University Bloomington)과 동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연구했다. 1972년, 지도교수 알마 아이커만(Alma Eikerman) 교수의 권유로 몽고메리 컬리지(Montgomery College) 금속예술 주임교수로 취임하며 43년간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김홍자는 동아시아 미학과 서구 모더니즘의 창의적인 융합과 더불어 다양한 금속 재료와 기법을 통해 금속이라는 매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전통적인 한국 금속공예 기법인 포목상감, 금부, 옻칠, 칠보 등을 일상적인 장신구부터 금속 예술 작품에까지 이르는 현대적 미감과 결합한 그의 작품은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는 도교 철학과 기독교적 사상을 깊이 반영한다.


김홍자는 미국에서 60여 년을 거주하며 미국의 금속공예 기법과 한국의 전통공예 기법을 융합하여 그의 예술적 탐구에 깊이를 더했다. 전시 제목인 《인연의 향연》은 미국 워싱턴 D.C., 뉴욕, 시애틀, 하와이, 세인트루이스, 독일 슈투트가르트, 중국 윈난성, 대만 타이난 등지에서 지난 삶과 다양한 문화 속에서 맺어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따뜻한 시선을 은유한다.


인간과 자연풍경을 모티프로 삼는 김홍자의 작품은 확고한 디자인 철학과 고도의 금속공예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前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이경성(2013)은 ‘언제나 그랬듯이 김홍자의 작품을 접하면 비록 금속이라는 생명체가 아닌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어딘지 생물학적인 느낌이 든다. 그것은 김홍자라는 연금사가 그의 손과 마음을 통해서 비정적인 물질에 살아있는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김홍자의 작품세계는 조형과 인간성이 잘 조화된 상태이다. 금속이라는 딱딱한 재료이지만 유기적인 형성과 다듬어진 기술에 의해서 살아있는 생의 호흡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평하였다. 김홍자는 작품을 통해 차가운 금속에서 따뜻한 인연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김홍자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반추상적인 여성의 형상은 운명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사실 과감한 도전을 이어가는 열정적인 작가의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반짝이는 브로치부터, 원근법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표현된 벽걸이 작품, 높이 약 2m에 이르는 대형 거울까지 다양한 크기와 용도, 재료의 구성을 통해 새롭게 변모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브로치나 찻잔과 같은 소형 작품에는 주로 유연하고 가공하기 쉬운 은을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색된 흔적을 담아낸다. 금속 예술 작품 등의 대형 작품에서는 동, 청동, 황동 등을 활용하며, 포목상감, 녹청, 금부, 금박, 옻칠 등의 기법을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인물 형상의 금속 예술 작품을 시작으로, 주전자, 잔, 쟁반, 거울 등 다양한 기능과 용도의 작품이 전시 공간을 채운다. 〈돌아가는 당신과 나〉(2022)에 사용된 녹청 기법은 작가가 미국에서 익힌 서양의 금속공예 기법으로, 작가는 이 기법을 1980년대 홍익대학교에서 풀브라이트 초청교환교수로 금속공예를 가르치던 때부터 한국의 금속공예계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도교에서 ‘선’과 ‘자비’를 상징하는 불사조(봉황)가 올라간 작품 〈불사조〉(2012/2024)에서는 은 표면 위의 금부 기법이 돋보이며, 〈대부〉(2022)와 짝을 이루는 〈대모〉(2012/2023)에서는 은과 금부, 옻칠의 정교한 조화를 통해 작가가 다양한 금속공예 기법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무지개풍경 VII〉(2012) 속 빛나는 금박, 은과 강하게 대비되는 착색된 동과 브론즈(청동)는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몽고메리 컬리지 미술학과 교수이자 갤러리 디렉터인 제임스 L. 브라운(1994)은 비대칭적인 구성은 허공에 힘들이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간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축소된 풍경 속에 흔히 쌍으로 등장하는 우아한 인물들은 고도로 추상화된 선적 요소로 조화롭고 활기찬 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김홍자는 학창 시절 드로잉 훈련을 통해 관찰력과 표현력을 길렀으며,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등과 같은 화가와 조각가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해 그들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다. 〈홀로서기〉 시리즈 및 〈묵상〉(2023), 〈기도하는 여인〉(2023)에서는 자연과 인체가 주요 소재로 쓰이며, 유기적인 형태, 빛나는 표면이 특징이라는 점에서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Spencer Moore), 그리고 아프리카 마스크로부터 받은 영향이 엿보인다.


2층에서는 한국 전통 창살문을 연상시키는 〈프리 댄스〉(1990), 〈회상 I〉(1990)을 중심으로, 칠보, 거울, 실크에 포토 프린팅 등 다양한 평면 작업을 선보인다. 〈프리 댄스〉, 〈회상 I〉은 프랑스 신인상주의의 시초로 평가받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1884) 속 여유롭게 산책하는 인물들에게 영감을 받은 1990년대 작품들로, 양식화된 인물 묘사와 학부 시절 섬유예술전공의 영향을 받은 장식적인 패턴이 돋보인다.


2000년대에 제작된 평면 작품 〈하와이 이민사〉(2009)에는 동서양의 다양한 도시와 문화를 거친 삶의 여정을 녹여내려 했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실크에 디지털 사진을 프린팅하고, 그 위에 붓 자국을 남기며 얹은 유화 물감과 은의 질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는 청년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다. 〈봄의 행진〉(2013), 〈여정 III〉(2009/2012), 〈연못가에서의 사색〉(2009)은 유년 시절 보았던 수련을 떠올리며 그려낸 정겨운 풍경으로,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겨있다. 이렇듯, 작가는 2000년대 이후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여 철저히 조형화된 화면을 구축하는 것과 동시에 시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김홍자는 ‘갈등’, ‘긴장’, ‘조화’ 속에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평온’, ‘영원함’, ‘무병장수’ 및 음양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홍자의 금속공예 기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술적 숙련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적 여정과 철학이 담긴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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